"여기에 뭘 한다고요? 저기 신길1구역 공공재개발한다고 발표난 거 말고요?"
지난달 31일 오후 ‘도심 공공주택 복합개발사업' 첫 선도사업 후보지로 선정된 서울 영등포구 옛 신길 2·4·15 뉴타운 구역에서 만난 주민들은 하나같이 갑작스럽다는 반응을 먼저 보였다. 이 일대는 과거 재개발사업이 추진되지 못해 정비구역에서 해제된 지역이다. 사업성이 떨어지거나 주민 간 이견이 있었던 것이다.
지역 내 공인중개사무소 안도 혼란스러운 분위기는 마찬가지였다. 몇몇 지역 주민들의 "어떻게 된 거냐"는 문의 전화에 중개사들은 부랴부랴 뉴스를 찾아보고 있었다.
2·4 대책의 핵심 중 하나인 ‘도심 공공주택 복합개발사업'은 역세권과 준공업지역, 빌라촌 등 저층 주거단지를 고밀 개발하는 것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이 주도하고 용적률 인센티브를 준다.
국토교통부는 이날 ‘3080+ 대도시권 주택공급대책 제1차 선도사업 후보지’로 지정한 영등포구, 금천구, 도봉구, 은평구 등 서울 4개구의 21곳 후보지를 선정했다. 이곳에 총 2만5000호를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3월 31일 서울 영등포구 옛 신길2구역 일대 전경. /허지윤 기자
발표에 따르면 정부는 영등포구 저층주거지인 옛(舊) 신길2구역(면적 6만710㎡)·4구역(5만1901㎡)·15구역(10만6094㎡)을 ‘주택공급활성화지구’로 지정, 총 4945가구를 공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주거상업고밀지구’로 개발하는 영등포역세권사업지(면적 9만5000㎡) 북측에 고층 업무·상업시설을 집중 배치하고, 주거단지는 남측으로 배치할 계획이다.
옛 신길 2구역 내 위치한 A공인중개사무소장 김 모씨는 "무슨 주민 공청회도 거치지 않고 기습 발표를 해버리냐"고 했다. 이곳에서 만난 주민 이 모씨는 "나 원참, 선거용이네!"라며 비판 목소리를 쏟아냈다.
지역 부동산업계에서는 개발 기대감과 공공 주도 사업에 대한 의구심을 동시에 드러냈다. 영등포역 인근에 위치한 T부동산 관계자는 "실제로 해제구역 개발이 이뤄질지, 어떻게 추진될지 지켜봐야겠지만 사업이 이행된다면 영등포구 일대 얼굴이 완전히 바뀌게 되는 것"이라면서 "노후화가 심한 주거지역과 주변 인프라가 개선되면서 영등포구 일대 신축 아파트단지나 상가 등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영등포구 신길뉴타운 일대의 정비사업 해제구역과 진행구역 간에는 풍경뿐만 아니라 가격 차도 크다. 정비사업이 진행된 구역의 경우 지하철 7호선 보라매역~신풍역을 따라 5000가구에 달하는 신축 아파트가 속속 입주를 끝내면서 지역 분위기가 바뀌었고, 집값도 뛰었다. 작년 12월부터 준공 3년 이하의 신축 아파트들의 전용 84㎡짜리 실거래가는 15억원선을 뚫었다.
신길2구역 김 모 공인중개사는 이날 정부가 발표한 자료를 살펴보더니 "실제 정부가 제시한대로 사업성을 올려주고 지원을 해준다면 토지 소유자들에겐 기회가 될 수 있는 긍정적인 조건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근데 지금 이 판국(LH 직원 부동산 투기 논란)에 공공이 주도하는 사업에 주민들이 믿음이 가겠느냐"고도 했다.
현재 신길 2·4·15구역 내 소유주들의 개발 의지는 강한 상황이지만 공공 주도 방식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신길2구역 재개발 추진위 관계자는 "이번에 정부가 선정한 ‘신길 2·4·15구역’은 지난해 각종 서류를 영등포구청에 제출해 민간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구청에서 서울시로 넘어가기까지 1년이 걸렸는데 그 와중에 이번 발표가 난 것"이라고 말했다.
추진위 관계자는 "정비사업 주요 근거가 되는 노후도가 이미 워낙 높은 지역인데, 공공을 통해 정비사업을 하면 서둘러 추진해주고, 민간 주도로 하면 늦게 진행시키는 건 부당하지 않느냐"면서 "다만 이번 발표가 강제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민들도 서울시장 선거 결과에 따라 정부가 추진하는 개발 세부 방식에 대해 협의를 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간이 정비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도정법과 주택법에 따르는 방식으로 개발을 진행한다면 공공임대 물량을 확대하는 등 기부할 의향도 있다"고 했다.
국토부에 따르면, 이번 3080+ 선도사업으로 재개발을 추진하면 종상향을 통해 용적률을 현행 대비 평균 238%P(포인트), 민간 재개발 대비 111%P 상향할 수 있고, 민간 재개발 대비 공급 세대 수는 1.4배 늘어난다.
한 주민은 "서울시장 선거 결과를 보고 나서 주민들이 논의해야 할 문제 같다"면서 "오세훈 후보가 서울시장이 되면 ‘공공 주도’라는 게 없어지고 민간 주도로 정비사업을 하는 기회가 열릴 수도 있고, 박영선 후보가 서울시장이 되면 공공이 적극적으로 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3월 31일 서울 영등포구 옛 신길15구역 일대. /허지윤 기자
그런가하면 지난 29일 발표된 공공재개발 2차 후보지 결과 ‘선정 보류’ 통보를 받은 영등포구 도림동 지역 내에서는 의심의 목소리도 나왔다.
이틀 전 공공재개발 2차 후보지 선정 결과에서 ‘선정 보류’ 결과를 받은 ‘도림동26-21’ 일부가 이틀 뒤인 31일 3080+ 대도시권 주택공급대책 제1차 선도사업 후보지 내에 포함돼 발표되자, 2·4대책에 따른 도심 공공주택 복합개발사업으로 편입시키기 위해 도림동 26-21 공공재개발 후보지 선정을 보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 것이다.
한 주민은 31일 오후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작년 9월 정부에서 추진하던 공공재개발 사업공모지로 선정 발표를 기다리던 중 2021년 3월 29일 ‘선정 보류’ 구역으로 분류가 됐고, 심의위원회로부터 보류 사유 결정에 대한 정식 공문을 기다리는 상황이었는데 이틀 뒤 도림동26-21구역의 일부분이 (선도사업 후보 구역에) 포함됐고 개발계획도 구체화돼 발표됐다"면서 "이번 선도사업 후보지에서 중복 구역을 철회해달라"고 청원글을 올렸다.
이 청원인은 "정부는 31일 선정지로 발표한 영등포역 인근 사업지의 노후도를 77.8%로 산정했는데, 공공재개발 선정 보류를 받은 ‘도림동26-21’ 구역이 중복되지 않는다면 노후도는 77.8% 이하로 떨어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공공 주도의 영등포역세권 개발이 추진된다면 도림동26-21구역의 노후도는 점차 떨어지게 되고 개발마저 추진이 어려워질 수 있고, 이로 인해 공공재개발 구역 공모에 동의한 소유주들의 불이익이 발생 할 수 있다"면서 "이미 공공재개발 공모 신청한 구역을 일부 포함시킨 중복 계획 발표는 개발 정책의 이중성과 기존 공공재개발을 공모한 소유주들을 기만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고 했다.
이 청원인은 "공공재개발을 추진하고 보류 결정이 된 도림동26-21 구역에 정부의 개발사업인 공공주도의 개발과 공공재개발구역을 각각 분리해 중복 구역없이 추진 진행돼야 불신을 해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국토부는 공공재개발 2차 후보지로 선정되지 않은 12곳 중 도림26-21 등 선정 보류된 8곳은 "용적률·높이 제한 완화만으로는 사업성 개선에 한계가 있어 실현가능성이 부족하거나 사업방식에 대한 주민 이견이 있어 재검토 후 차기심의회에서 선정여부를 재논의하기로 하고 보류 결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런가 하면 이 지역에서 오래 거주한 한 주민은 주거지를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내비쳤다. 1978년부터 신길15구역 내에서 줄곧 살고 있다는 주민 하 모씨는 "2004년까지는 이곳에 주택을 보유했고 월세 임대도 했는데 당시엔 은행 이자가 높아 부담이 돼 집을 처분했고, 현재 무주택으로 전세살이를 하고 있다"면서 "나같이 이 동네 오래 살아온 무주택 원주민들은 개발이 이뤄지면 쫓겨나게 생기는 것 아니냐, 달갑지 않다"고 말했다.
조선비즈 (허지윤기자/2021.04.01)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21/04/01/2021040101799.html